작년이었던 거 같은데.
말도 안되게 야구 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더이상 쓸 생각도.
쓸 수도 없을 것 같아서.
기록 삼아 남겨봄.
투수가 공을 던진다.
타자는 투수가 던진 공을 친다.
공을 맞춘 타자는 1루를 향해 달린다.
상대편 수비수는 타자가 친 공을 잡거나 1루에 던져 타자를 아웃시킨다.
타자가 친 공을 수비수가 아웃을 시킬 수 없을 경우에는 타자가 주자가 된다.
주자가 1루, 2루, 3루를 지나 홈으로 돌아오면 1점이 된다.
야구는 참 복잡하다.
나에게 야구가 뭐냐고 물어본다면.
10년 동안 기자질을 해온 나도 야구의 룰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어도.
쉽게 대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왜 Baseball이 야구인지는 모르겠다.
일본에서 온 표현이 야구(野球)라고 하지만
Baseball을 그대로 번역하면 누구(壘球) 이렇게 되는 거 아닌가?
누구(壘球)라고 하니까 누구(who)라는 말이 묘하게 느껴진다.
누구(who)가 치고, 달리고, 던지는 누구(壘球).
난 그게 참 좋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다 보면 어느 순간 좋아하는 일에 대한 흥미보다는 그저 밥벌이로 되어가는 걸 느낄 수 있는데 그래도 그게 참 좋으니까.
오늘도 시끄러운 야구장에 가서 내가 담당하는 팀의 기사를 쓰고 왔다.
그리고 오늘 본 투수는 내가 왜 그걸 좋아하는지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 투수 이름은 이호.
나이는 35살.
시즌 초반 2군 취재를 갔었는데도 처음 본 선수였다.
기록지에 적으려고 리포트에 올라온 한자를 보니
호(祜) 자를 가진 이름이었다.
이호는 그저 평범해 보이는 투수였다.
홈팀이 8점 차로 지고 있는 6회 3번째 투수로 올라온 투수였다.
오늘 2군에서 1군으로 콜업된 선수였고
오늘 최고 구속은 138km.
구종은 패스트볼,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볼끝이 지저분한 스타일로 땅볼 유도를 하는 선수로 보였다.
난 이 투수의 모습이 맘에 들었다.
내가 좋아했던 메이저리의 투수 그렉 메덕스와 비슷한 폼으로 던졌고
그렉 메덕스처럼 제구가 정말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왜 이 선수를 몰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투수 이호는 6회부터 7회까지 투구 수 17개를 기록하고 교체되었다.
경기가 끝나고 친한 홈팀 프런트의 김 과장과 그 투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호 쟤 언제부터 있던 애야”
“나도 잘 몰라, 사장님이 좋다고 그냥 무작정 일본 독립리그에서 던지던 애를 그냥 데리고 왔어”
“박사장이?”
“응 사장님이 그냥 감독님한테 무조건 좋다고 써보라고 했데.”
“그래서 감독님이 그냥 울며 겨자 먹기로 오늘 올린 건데 그래도 나쁘지는 않은 거 같네”
“내일 나 이호 취재 좀 하게 일찍 나오라고 해”
“그럴래? 뭐 기사거리나 있겠어?”
“난 그냥 좋아서 그래”
꿈은 언제나 옳다.
나는 어렸을 적 혼자 자야 되는 밤이면
야구공을 손에 쥐고 잠을 잤다.
그러면 꿈속에선 나는 유격수 1번 타자가 되어 있었다.
이호를 만나는 날도 그 꿈을 꾸었다.
보통 야구 경기시간은 오후 6시 30분.
2시 30분부터 홈팀이 연습을 시작한다.
2시간 동안.
그리고 경기 시작 30분 전까지.
남은 2시간을 어웨이 팀이 연습을 한다.
그날 이호도 역시 마찬가지 시간에 경기장에 나와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스트레칭을 하던 이호에게 난 잠깐만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순간 당황한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쭈뼛쭈뼛 나를 따라와 더그아웃에 앉았다.
“난 처음 봤어요 어제. 원래 일본 독립리그에 있었다고요?”
“예…”
“그럼 야구는 언제부터 하셨죠? 죄송해요 제가 정보가 없어서요?”
“아… 공 던진지는 20년 정도 된 거 같아요. 중학교 때부터 했어요.”
“중학교부터요? 그럼 늦게 시작했네요?”
“대학교 가고 나서 알았어요 제가 늦게 시작했다는 걸”
“원래는 유격수였어요 근데 팀에 던질 투수가 없어서 제가 던지기 시작했죠.”
“아 그래요 그럼 출신 학교가?”
“잘 모르실 텐데 매사중학교, 덕진고등학교 나왔고요. 대학은 수려대 나왔어요.”
“그러시구나 죄송해요. 제가 잘 몰라서”
“괜찮아요 제가 나온 중학교 고등학교는 저 졸업하고 1년 뒤쯤 야구부가 없어졌고요. 대학팀도 제가 2학년 때 야구부가 사라졌어요”
“세상에 그럼 대학 이후에는 어떻게 운동을?”
“야구부 없어지고 처음 1년 동안은 그냥 학교 다녔어요. 수업도 듣고 운동 안 한 동기들과 어울리기도 했고요 근데 야구가 너무 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무작정 일본으로 떠났어요. 적어도 야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요. 일본에서 정말 오래 있었어요.
처음엔 3년 동안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일본어도 배우고 일도 하면서 야구했고요.
군대 가야 돼서 다시 돌아와서 입대했고 제대하자마자 다시 일본으로 가서 지난주까지 계속 있었네요”
“근데 박사장 아니 구단주님 하고는 어떻게 알고?”
“저도 어떻게 인연이 됐는 줄 모르겠지만 구단주님께서 일본 여행을 하셨나 봐요.
그때 우연히 제가 던지는 걸 보고 맘에 들으셨는지 말을 걸어오시더라고요. 한국에서 공 던질 생각 없냐”
“처음에는 제가요?
이렇게밖에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전 그냥 그런 투수잖아요.
구속도 평범하고 변화구도 그냥 그렇고 근데 그렇게 말씀해주셔 깜짝 놀랐죠.
정말 모르겠어요 왜 구단주님께서 그렇게 저를 보셨는지”
나는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홈팀 코치가 이호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다음에 더 많은 이야기 해요.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요”
“예 감사합니다”